무자비한 폭력교사들의 일상적인 싸다구에 마비된 나와 동창들

3년이라는 시간은 폭력과 억압속에서 흘러갔다. 이미 교사들의 무자비한 폭력은 학생들에게 그저 풍경처럼 익숙해져서 큰 구경거리도 아니였다. "저쪽 이과의 생물선생 누구누구는 애들 때릴때 돌려차기도써", "그래도 타이슨 주먹 최고여","정치 그xx는 애들 싸대기 때릴때 손이 안보여ㅋㅋ" 하면서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폭력에 이성이 마미될 지경이였다. 아니 벌써부터 마비되었던 것이였는지 모른다. 어느날 청주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싸다구를 때리는 것으로 유명한 교사는 학생이 타율학습시간에 적고있던 일기장을 빼앗아 보고 그곳에 자신의 욕이 써있는걸 보게되었다

  ' 경찰은 XXX ( 싸다구 때리는 선생이름 ) 같은놈 안잡아가고 뭐하나 몰라 -AAA말씀- '
 
XXX이라는 교사는 일기장의 주인공을 교무실로 끌고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덩치크고 착한 내친구는 커다란 얼굴이 시뻘게져서 교실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폭력을 온몸으로 처참하게 경험한 충격 그자체였다 그리고 팅팅부어오른 얼굴이 움직이면서 외마디를 남겼다.

   "AAA야 너 교무실로 오래" ...


  그녀석의 얼굴을 본 AAA는 매우 당황스러워 하면서 힘겨운 욕한마디를 내뱉으며 교실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참후 비슷하게 부어오르고 단풍처럼 빨갛게 물들은 얼굴로 갈아입고 그친구도 교실로 돌아왔다. 그친구는 일기장 친구에게 화를내며 설움을 풀었다... 매우 커다란 비극이였다. 그 긴시간 동안 쉴새없이 따귀를 맞으며, 수많은 교사들 앞에서 폭언을 들었을 그의 억울함은 모두에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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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에 적은 문장 하나가 거대한 폭력을 정당화해버렸다


  한 학생이 일기장에 써놓은 한구절의 뒷담화를 보고 이토록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매우 분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어느누구 하나 이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못했다. 이들은 어린 학생들이였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그 배움의 크기가 가장 많고 또 섬세한 어린 학생들 이였다. 두학생의 머릿속에 지독히도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새겨놨을 뿐만아니라 그것을 본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부당한 세상의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항하지 못한 나와 그곳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다른 수많은 부당한 사건에도 학교와 교사들의 폭력에 두눈을 감고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이사건은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렸다. 


  최근의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엔 교무실에서의 무자비한 폭력이 오갈때 그것을 제지하는 선생이 아무도 없었다는, 그래서 더욱더 비참했었다는 이야기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 황당한 교사의 폭력이 수많은 다른 교사들 앞 교무실 중앙에서 이뤄졌다는 것이고 아무도 그 황당한 폭력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였다는 충격적인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따귀를 날리는 폭력교사들이 넘쳤던 나의 고등학교  

   나는 오래전 수능을 치루고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학생이였을때 나는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았었다. 내가 사는 청주에서도 가장 억압이 심한, 별명이 '정신병원'이였던 학교에 다녀서일까... (그때 당시 그학교는 별명처럼 학교건물의 색깔또한 하얗게 칠해져있었다... lol) 자유로운 성격의 나는 최소한 공부하는 방법만은 내방식대로 하고싶었다. 하지만 학교이름앞에 '대'자를 꼭붙여서 말하는 선생들을 보유한 그학교는 나에게 공부하는 방법마져도 강요하였다. 빡빡이라는 중학교에서도 아~주 조금이나마 볼수있었던 틀에 맞춰져있는 학습법은 '대'정신병원에선 더욱 강화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시행되었다. 연습장을 앞뒤로하여 조금의 틈도없이 영어단어나 수학문제풀이등을 적어서 교사에게 제출해야 하는 빡빡이는 내겐 정말 악몽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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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시험 본 다음에 잊어버린 학생과 시험보기 전에 잊어버린 학생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학교와 교실이 차별과 억압을 '익하는' 곳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중에서-





  철없던 초등학교를 지나서 과도기적인 사춘기인 중학교시절을 경험하고 이제 꿈에 대해서 조금더 창조적으로 생각해 봐야할 나이에 이르렀을때, 우리는 교도소 생활보다도 더 흔한 폭력이 행해지는 곳에서 자유의지와 꿈을 잃어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그건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대입수학능력평가시험'이라는 제도 때문이였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오로지 이 하나의 시험에 좋은 결과를 내기위해 이뤄지고 있었다. 왜 좋은 결과를 내야하는가? 그건 한국사회의 신분과도 같은 수직서열별 대학시스템의 높은 위치에 있는 대학에 자신들의 학생들을 집어 넣기 위해서다. 그래야 그 고등학교는 철없는 학부모들에게 명문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고, 이는 내가 졸업한 '대'정신병원 같은 사립재단이 운영하는 고등학교에겐 매우 군침도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나 연고대같은 서열이 높은 대학교에 자신의 학생이 들어가야 교문앞에 자랑스럽게 내다 걸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학생들의 꿈과 미래 그리고 행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억압과 폭력으로 교문앞에 내다 거는 헝겁의 포장에 모든 관심이 있는 것이다. 수능결과가 발표되고 시간이 흘러 대학원서 전쟁까지 끝나면 뻔뻔한 교사들은 4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서 서울대가 몇명이니 어쩌니를 발표한다. 그리고 40명의 학생들 앞에서 서울대나 연고대를 간 학생을 매우 자랑스럽게 인사시키고 흐뭇해한다. 음... 정말 이땅의 교사들은 양심이란게 없는걸까? 아님 뭔가? 이미 그순간 포함되지 못한 아이들은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될것이다. 아니, 이미 삼년동안 철저하게 비이성적인 제도와 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땐이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멍때리고 있을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서울대학교나 연고대가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한국의 수많은 고위 관료들 및 정치인들이 전혀 훌륭하지 못한 행보를 연발하고 있는 현실에 비친 블랙 코미디가 학교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수준 높은 블랙 코미디가 아닌 당황스러운 것이 교실에서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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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종주의'를 내면화하여 경쟁과 차별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에서-
우리 학생들은 좋은 가치에 관해서는  어쩌다 '배울' 뿐이고 일상 속에서는 그 반대를 '익힌다'.

우리 학생들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 연대의식을 어쩌다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혼자 이기는 것을 '익힌다'.

우리 학생들은 인권의식에 대해 이따금 배울 뿐이고, 일상에서는 인권 침해를 몸에 익힌다.

우리 학생들은 자유, 평등의 가치를 어쩌다 배우고 일상에서는 억압과 차별을 몸에 익힌다.

이렇게 우리 학생들은 일상에서 억압과 차별, 인권 침해를 겪으며 몸에 익히기 때문에

나중에 남을 억압,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중에서-



  사회 기여도가 지극히도 낮은 정보들을 평가하는 "대입수학능력평가"는 아이들에게 카스트제도같은 신분을 안겨준다.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학생 개개인의 꿈과도 연관성이 매우 떨어지는 학문도 아닌... 정보들을 대입시험은 요구한다. 마치 요즘 취업 이력서에 TOEIC이라는 황금어장이 되버린 영어학원 시장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는 시험이 요구되는 것과 매한가지다. 한국사회의 대입과 취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주제다. 지금 한국 사회가 병들어 있는 이유중 하나를, 나는 '대입과 취업의 허식'이라 말하겠다. 허식이란 실속이 없이 겉만 꾸민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과 사회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회사를 들어가는데 요구되는 조건들이 굉장히 당황스럽다. 대입시험에 외국어 영역이 존재한다. 도데체 왜? 대부분이 여전히 창조적이고 뛰어난 감각을 지닌 아이들에게 "홧아유두잉"이라는 발음을 구사하는 교사들이 "암기!"를 외치며 주먹으로 때리며 english를 구구단 외우듯 암기시키는 현실이 존재할까... 더군다나 정확한 답이없는게 당연한 인문학을 언어영역이라는 이름으로 평가한다. 예문의 답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형식때문에 이 영역자체는 매우 억지스러운 부분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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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될 수 없는 학문


 


  학문은 강요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노동도 마찬가지 겠지만, 학문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서열을 매겨버리는 과오를 이젠 그만 범해야한다. 여기서 대학평준화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 국민들을 자극해야 한다. 이미 순위가 매겨져버린 대학들이 존재하는한 모두를 위한 교육은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열이 결정되는 대학신분자격 위한 교육은, 더이상 교육이 아닌 야만스런 경쟁으로 몰락해 버렸다. 우리가 지금 어린 꿈나무들에게 행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과정은 '교육','학문','배움'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중학교평준화, 그리고 고등학교평준화로 진화되어갔다. 하지만 현재 거꾸로 가는 교육은 일제고사의 부활 , 고등학교차별화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계화, 세계최고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세계최고의 교육시스템들을 만들어낸 국가들의 경험에서 전혀 배우려 하지 않고 학교를 무한경쟁과 폭력, 억압, 체념의 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대학 평준화를 위해 오래된 명칭을 보존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지역 제1대학, 지역 제2대학으로 표기하고 있다. 물론 핀란드나 프랑스 스웨덴같은 나라들의 교육시스템을 무작정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러 다른세상을 통해 배울점은 분명이 많다. 심각한 교육과정문제에 직면한 사회답게 이런것들을 공론화해서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마치 산업화 사회의 근로자 양성을 위한 공장식 교육방식처럼 운영되는 우리의 교육은 더이상 후퇴해서는 안되며 활발한 사회적 토론을 통하여 모든 고교졸업생들이 꿈을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으로 바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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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준화에 대한 적극적 상상력은
'지적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


 




 오늘은 공무원 출근시간까지도 미뤄지는 한국의 국가적 관문의 날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이맘때면 거리엔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찹살떡이나 엿, 그밖에 각종 상술이 가미된 상품들이 넘쳐난다. 포탈사이트의 뉴스기사에는 선배들을 응원하는 학생들이 수능이 있는 학교앞의 좋은자리를 맡기위해 진을치고 밤을 샌다는 이야기와 각종 종교행사에서 기도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볼수있다. 하지만 잘훈련받은 백만대군중에도 열외로 분류될 사람은 분명히 나타나는법, 그러한 몇몇의 사람들도 눈에 띈다. 수능을 거부한다는 학생들, 그리고 이나라의 교육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 내가 만약 움직이고 있었다면 나는 후자에 속했을 것이다.


  이제 곧 아침이 밝아오고 아이들은 각자 배정된 학교로 향할 것이다. 억지스런 바램일지 모르지만, 오늘 가장 많은 기도를 올릴 부모님과 수험생 및 관련된 분들의 기도가 일제강점기를 지나서도 치유되지 못한 한국 교육의 정상화에 향해졌으면 한다. 당신의 자녀 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자녀가 1등이 아닌 함께 웃을수 있는 교육을 꿈꿔보자. 시험에 들었을때 자신을 숨기는 교육이 아닌, 함께 둘러앉아 해결하는 사유화의 무릉도원을 우리 모두가 찾아야 할때다.


2008/11/1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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