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명대사 - '야만인을 기다리며'

 

오래전에 읽은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소개해드릴께요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200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존 쿳시의 장편소설이에요 제국과 야만인들이 사는 곳의 경계가 되는 익명의 변경을 배경으로하여 지배하는 사람들과 지배당한 자들 그들 사이의 폭력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소설이지요


 






문명이라는 것이 야만인들이 가진 미덕들을 타락 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문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아침의 맑은 고요속에서, 알수 없는 어떤 감정이

내 의식의 언저리에 도사리고 있다는걸 발견한다


"전에는 내가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적이 없었지"


우리가 대화수단으로 이용하는 임시변통의 언어속엔 뉘앙스라는게 없다

그녀는 사실, 즉 실질적인 표현을 좋아하는것 같다

그녀는 억측이나 질문이나 가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진실로 채워줘야 할 때, 문답적 족집게를 갖고 이것저것

알아보려고만 하는 무능한 교장선생님같다


어떤 의미에서보면, 나는 그녀의 형체에 노예상태가 된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부서졌다, 무엇인가가 하늘에서, 아니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나한테 떨어졌다


욕망은 거리감과 분리감이 주는 비애를 동반하는 것 같았다

그걸 부인한다는건 부질없는 짓이였다


"다시 보고 싶지 않니?"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자 ,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해진다

우리는 웃는다


잠에서깨자 마음이 완전히 진공상태가 된 느낌이다

두려움이 일기 시작한다 나는 한참동안 노력을 하고 나서야

시간과 공간감각을 되찾는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내가 상처받았다는걸 나에게 얘기해줄 마음의 움직임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떠나려한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쳐다보고,

내마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며, 그녀가 누구인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정의 야만인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을 목격한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괴로워하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는것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서려고 하는가? 우리가 정의에 대한 개념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쳐다보며, 눈으로 나의 얼굴을 더듬는다


나는 그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 그건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다

나는 말을하며 그가 그말을 내 입술에서 읽는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안에 범죄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에게 가해야 하는 법이다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바라보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 표현되는

존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 요즘처럼 많은 분들의 관심이 정치와 정권에 쏠려있는 시기와

어찌보면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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