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칼레의 시민들
- 인생은 예술/아름다운 나라
- 2014. 2. 19.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는 의미를 지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에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 '칼레( Calais )' 1년 가까이된 군대의 거센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들을 우회해서 프랑스 본토를 공략하고있던 대규모의 영국군이 있었기에 원병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시민군을 조직해서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칼레는 결국 항복하였지요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했고 그 점령자는 항복의 조건으로 도시의 시민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으로 6명을 죽이겠다는 의미였죠 그러면 모든 나머지 칼레 시민들의 생명을 보장한다고 했어요 어느 누구도 쉽게 나설 수 없는 죽음의 길에 칼레 광장의 시민들은 숨죽였다고 하네요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유한 Eustache de St Pierre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여섯사람중 하나가 되길 자청하며 외쳤습니다 '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 나오라 용기를 가져라!" 그를 따라 시장, 상인 , 법률가등 부유한 귀족들이 나섰습니다. 그렇게 모든 칼레 시민들을 대신하여 죽을 여섯명이 정해지죠 그리고 그들은 칼레시 모든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교수대를 향해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형되기 바로전...
당시 임신중이였던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왕비는 그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극적인 순간에 용감한 생 피에르를 포함한 칼레의 6명은 살아나게 됩니다. 그들의 굉장한 용기와 모두를 위한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하네요 ^^
그리고 시간이 흐른후 그때의 용감한 칼레의 6명을 위한 기념상 제작이 이뤄집니다. 고집스런 그의 작품은 죄인 같은 모습의 초라한 행색의 모습이였고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비틀린 팔과 비탄에 빠진 좌절하는 표정들, 죽음앞에서 매우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속세의 인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표현된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영웅을 표현한 작품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오귀스트 로댕 Rene Francois Auguste Rodin , 고집스러웠던 조각가는 그 작품에 받침대 조차 없이 전시하길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위대한 희생정신 있던 칼레의 6명 그리고 550년후인 1895년 그들의 모습은 로댕의 의지대로 결국 만들어지고 전시됩니다.
그리고 로댕은 말합니다
높은 곳에 두었다면 영웅성을 찬양함으로써 진실을 잊게 했을 것이다"
영웅주의적인 의미나 애국적 가치 대신 그때 그대로의 사실성 속에서 위대한 진실을 표현해 낸것이죠 오늘날 칼레에 전시된 기념상 대다수는 행인들의 높이와 나란히 서서 정원이나 마당 바닥에 그대로 서있다고 하네요. 로댕은 고통스럽게 외치는 그당시의 생 피에르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것이지요 ^^
Noblesse Oblige "내가 그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 되겠소" -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 -